1930년대 독자들이 접한 『부인공론』은 세 종류가 있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부인공론사판, 이보다 늦게 창간된 사해공론사판, 그리고 이 두 잡지보다 훨씬 앞서 1916년 1월부터 동경에서 발간되어 온 중앙공론사판 일본잡지가 그것이다. 부인공론사판은 1932년 1월에 창간된 월간 종합 여성지이다. 부인공론사판 4호는 1932년 5월 9일에 발행되었다. 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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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독자들이 접한 『부인공론』은 세 종류가 있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부인공론사판, 이보다 늦게 창간된 사해공론사판, 그리고 이 두 잡지보다 훨씬 앞서 1916년 1월부터 동경에서 발간되어 온 중앙공론사판 일본잡지가 그것이다. 부인공론사판은 1932년 1월에 창간된 월간 종합 여성지이다. 부인공론사판 4호는 1932년 5월 9일에 발행되었다. 4호 외에는 소재 불명이다. 편집겸발행인은 한몌례(韓袂禮), 인쇄인은 김윤식(金潤植), 인쇄소는 잡지사 독자 운영의 부인공론인쇄소, 발행소는 경성부 숭인동 부인공론사, 정가는 비교적 싼 20전이었다.
당대 신문들은 ‘부인공론’이라는 제호를 단 동명이종 잡지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잡지사명을 부기하며 기사를 썼다. 그러나 후대에 자료들이 대거 유실되고 섞이면서 동명이종 잡지들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많은 혼선을 빚어 왔다.
편집겸발행인 한몌례에 대해서는 해방 후 동일자혜원 원장직을 맡았다는 사실 외에 확인되는 사항이 없다. 인쇄인 김윤식은 1898년생으로 한문을 사숙하고 기독교 청년회학교를 수료한 후 용산 인쇄국에 근무하다가 1925년부터 동아일보사에서 근속해 온 인물이다. 부인공론사가 독자적인 인쇄소를 경영, 유지할 수 있었던 근거를 짐작하게 한다.
제4호에는 김동환의 「낙동강」, 정지용의 「바다」와 「석취(石臭)」, 황석우의 「꽃」(시)과 김억의 「한 개의 강징(强徵)」(수필)이 게재되었다. 홍효민, 한몌례, 김윤식, 유광호 등이 주필자이다. 지식인 여성을 비판하는 이부전(李富全)의 「김활란 박사에게 기함」이 흥미롭다. (해제: 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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