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발명학회에서 김용관·박길룡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창간한 잡지. 1930년대 김용관(金容瓘), 박길룡(朴吉龍) 등 발명학회(發明學會)와 과학지식보급회(科學智識普及會)의 주도자들에 의해 두 기관의 기관지로 간행되었으며, 발명 및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고, 과학기술 지식을 대중에 보급하는 등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대중 과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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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발명학회에서 김용관·박길룡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창간한 잡지. 1930년대 김용관(金容瓘), 박길룡(朴吉龍) 등 발명학회(發明學會)와 과학지식보급회(科學智識普及會)의 주도자들에 의해 두 기관의 기관지로 간행되었으며, 발명 및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고, 과학기술 지식을 대중에 보급하는 등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대중 과학기술 잡지의 역할을 했다.
조선인 발명가들을 보호 육성하기 위해 김용관, 박길룡, 이인(李仁) 등이 설립한 발명학회는 1933년 6월 학회의 기관지로 『과학조선』을 창간했다. 창간 초기에는 발명가들에게 발명활동을 돕기 위한 실용적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 전반에 발명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내용이 기사의 주를 이루었지만, 1934년 발명학회를 주도로 한 과학대중화 사업이 대규모 대중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과학조선』의 성격도 점차 대중적 과학잡지로 변모했다. 1934년 7월 과학대중화 운동을 전담할 기관으로 과학지식보급회가 설립된 이후 『과학조선』의 간행 주체는 발명학회에서 과학지식보급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과학조선』의 편집 체제는 B6판으로, 매호 1,000부씩 발행해 대부분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 회원에게 배포되었다. 월간지로 간행되었지만,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의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 과학운동에 대한 조선총독부 당국의 탄압 등의 이유로 제때 간행되지 못하거나 오랜 기간 휴간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1936년 이후 1939년까지는 거의 간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학조선』은 일제의 군국주의가 본격화된 1939년부터 속간되기 시작하여 1941년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간행되었다. 1933년 창간호부터 1936년까지 4년간 간행된 11책의 『과학조선』은 198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연구소의 편찬으로 과학세기사(科學世紀社)에서 영인 간행된 바 있다. 2013년 우리나라 최초 과학종합잡지로 인정받아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發明學會出版部(발명학회출판부), 科學知識普及會(과학지식보급회), 科學普及協會(과학보급협회) 등으로 발행처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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