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회의록』은 1908년 안국선을 저자로 황성서적조합에서 낸 책이다. ‘연설체 소설’ 혹은 ‘토론체 소설’로 명명되고 있지만 발간 당시 안국선은 책이나 광고 어디에서도 ‘소설’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잘 알려져 있듯 안국선은 독립협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개화파 안경수의 아들이다. 소설가 안회남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안국선은 『금수회의록』을 내기 전 『연설법방』과 『비율빈전사』를 냈고 1910년대에는 『공진회』 등을 간행했다. 이 중 『연설법방』은 일본 서적을, 『비율빈전사』는 필리핀 서적을 중국인이 번역 간행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공진회』는 한국 최초의 단편소설집으로 꼽히지만 그 중 일부는 일본 라쿠고(落語)의 전통적 레퍼토리를 번안해 옮겼다고 한다. 몇 해 전에는 『금수회의록』 역시 일본의 『금수회의인류공격』 일부를 번역한 것이라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금수회의인류공격』이 오롯한 창작인지, 그렇잖으면 역시 외래 텍스트에 영향받은 번역 혹은 번안인지는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짐승의 입을 빌려 인간세상을 공격하다
『금수회의록』의 원작으로 확인된 사토 구라타로(佐藤藏太郞)의 1904년작 『금수회의인류공격』은 총44종의 짐승이 차례로 연단(演壇)에 서서 인류를 공격한다는 내용이다. 『금수회의록』에서 그 범위는 까마귀, 개구리, 벌, 게, 원앙, 파리, 여우, 호랑이의 여덟 종류로 줄어들었다. 까마귀는 불효한 세태를 꾸짖고 개구리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식견을 한탄하며, 벌은 입에 꿀 바르고 속으론 딴청인 풍속을, 게는 내실 없는 겉치레 시속을, 원앙은 부부 간 윤리마저 흔들리는 현실을 각각 비판하고 있다. 이어 파리는 이익 좇는 데만 분주한 사람들을, 여우는 호가호위(狐假虎威)식 허장성세를, 호랑이는 맹수보다 무섭다는 가혹한 정치를 공격한다.
『금수회의록』은 1909년 통감부에 의해 출판법이 발효된 직후 『월남망국사』 등과 더불어 제일 먼저 판금되고 가장 먼저 압수, 소각된 책이다. 이런 수난은 역설적으로 『금수회의록』에 그 계몽적·민족주의적 색채에 대한 든든한 신뢰를 보낼 수 있게 했다. 실제 동물들의 연설에서 비판되는 폐단이며 대안으로 거론되는 가치가 첨예하게 정치적이거나 심지어 당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별반 문제되지 않았다. 사실 ‘반포지효(反哺之孝)’나 ‘쌍거쌍래(雙去雙來)’ 등으로 요약되는 본받을 만한 미덕, 반대로 ‘구밀복검(口蜜腹劍)’이며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같은 부정적 현상은 거의 초시대적인 것이라 그 자체로 『금수회의록』의 민족성이나 계몽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금수회의록』의 정치적인 면모는 시사성과 결부된 것이라기보다 시절을 걱정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태도 자체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하는 편이 온당하겠다. 『금수회의록』의 정치성은 그 실내용에서는 다분히 추상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금수회의록』이 번안작이라는 결론은 신소설, 나아가 근대 초기 서사 양식 전반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잘 알려져 있듯 근대 초기 역사·전기물로 불리는 서사 중 상당수는 중국이나 일본의 앞선 서적을 번역한 것이다. 신소설이라는 표제 하에 출간된 책 중에서도 번역·번안물이 많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는 메이지시기 유행했던 소설의 상당수가 번안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적잖은 충격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국의 『장한몽』이 일본의 『곤지끼야샤(金色夜叉)』의 번안이라면 『곤지끼야샤』는 다시 미국 여성 작가 클레이(B.M.Clay)의 Weaker than a Woman을 번안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Weaker than a Woman은 짧은 시기의 인기작이었던 만큼 그 또한 혼성모방의 산물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렇게 보자면 번역과 모방은 일반적 조건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19세기 유럽 낭만주의에 의해 정초된 창조와 독창성이란 가치는, 특히 근대문학 형성기에는 불충분하거나 부적절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독교 도덕으로 약육강식의 현실 넘어서려
『금수회의록』 표지에는 본문에 등장한 여덟 종류의 동물 외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까마귀 외 새도 있고, 개과에 속하는 듯 보이는 짐승도 여럿 있으며, 중앙에는 중요 인물인 듯 양이 크게 그려져 있다. 백인 신사풍의 사람도 한 명 보인다. 『금수회의록』대로의 내용만을 생각하면 다 이해되지 않는 이런 구성도 사토 구라타로의 『금수회의인류공격』을 떠올리면 납득할 만하다. 실제로 『금수회의록』 표지는 『금수회의인류공격』 중 어느 삽화와 닮은꼴이라고 한다. 어쩌면 본래 안국선은 『금수회의인류공격』을 좀더 번역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듯 『금수회의록』이 번역, 그것도 미완의 번역이었다고 해도 그 당대적 가치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금수회의록』은 “옛적 사람은 양심이 있어 천리를 순종하여 하나님께 가까웠거늘”이라는 탄식에서 시작해 “대소와 강약이 서로 부동하여 해를 받는” 세태를 교정하려는 취지로 토론회를 열었다고 진술한다. 대소(大小)·강약(强弱)이 서로 해를 끼친다는 현실은 거의 범시대적이지만 당시 맥락에서는 약육강식론을 직접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금수회의록』이 제안하는 대안적 현실은 대소와 강약이 서로 본분을 지켜 화합하는 길이 될 것이다. 실제로 『금수회의록』에서는 “머리에는 찬란한 관을 쓰고 몸에는 오색이 영롱한 의복을 입”은 채 기독교의 예수를 연상시키는 “회장인 듯한 한 물건”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그 자신 기독교도였던 안국선이 기독교 도덕을 통해 국제적·국내적 약육강식을 모색할 방법을 모색했고, 그것이 번역 여부를 넘어 적잖은 호응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이런 사정만으로도 『금수회의록』은 여전히 기억할 만한 책이다.(해제: 권보드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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