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8월 10일 풍림사에서 간행된 오장환의 제1시집이다. 크기는 12.7㎝×18.8㎝, 27면이고, 16편의 시를 수록했다. 고급 한지(韓紙)를 사용했다. 이병현과 김정환의 멋진 판화 3편이 삽입되어 있다. 『성벽』 재판본 <범례>에 따르면 “이 시집의 초판은 1937년 8월, 풍림사 홍구(洪九) 형의 이름으로 간행되었으나 기실은 백 부 한정의 자비출판이었다.”고 한다. “조선서는 처음으로 좋은 백지를 쓰고 판화를 따로 붙이고 두터운 표지에다 장환의 취미대로 책을 만들어 시집 이름을 『성벽』이라고 붙여 세상에 내놓았다.” (이봉구, 『도정』, 234면)
시집 성벽에는 구시대의 유물과 병든 도시의 뒷골목 인생들을 산문적 리듬으로 포착하는 시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시적 화자는 사회적 타자를 자임하며 타락한 근대의 이면에 주목하고 대항하는 자세를 취한다. 현대 지식인의 비극적 자기 인식과 퇴폐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표지에는 ‘성벽 오장환시집’이란 표제가 단순하면서도 세련되게 음각으로 찍혀 있다. 내제지(속표지) 다음에 이병현의 칼라 판화 <꽃>이 붙어 있는데, 꽃잎이 큰 것이 모란처럼 보인다. 다음 장에 “슬픔의城門을열어준나의님에게”라는 구절을 박스처리해서 써놓았다. 다음은 <목차>, 제1부, 제2부를 나누었다. 제1부에 14편, 제2부에 2편의 시를 싣고 판화 제목과 화가 이름을 밝혔다. 제1부 시작할 때 ‘제1부’라는 표지 없이 이병현의 판화 <해변>을, 제2부 시작할 때는 김정환의 판화 <밤>을 배치하는 것으로 ‘부’ 구별을 대신했다.
이 시집은 오장환이 이병현에게 증정한 것이어서, 오장환이 친필로
秉玹 氏
점잔흔 손들의 傳하여오는
風習엔
게집의 손목을 만저주는 것.
妓女는 푸른얼골, 근심
이 가득-하도다
丁丑年 八月
愚弟 吳章煥
라고 적어 놓은 구절이 있어 정답다.
판권지를 보면 이 시집은 “안국정 153 중앙인쇄소”에서 인쇄했다. 이곳은 『시인부락』의 인쇄소이기도 하다. 안국정 153번지에는 중앙인쇄소와 함께 도서출판 및 판매소로서 중앙인서관(中央印書館)이 있었는데, 『시인부락』 총발매소이기도 했다. 이곳은 오장환 집(운니정 24)과 지근거리에 있었으며 오장환 그룹의 아지트였다. “시인부락이니 풍림이니 잡지를 내느라고 새벽부터 밤까지 드나들어 중앙인서관의 주인 되시는 신(申) 선생에게 미안”할 정도였으며, “중앙인서관에서 우리들이 아침부터 모여 밤 깊어 거리로 나오던 그때에는 오로지 신 선생의 아량과 홍 군의 우정 아래 허물없이 모이었다.” 이봉구, 『도정』, 234면.
오장환의 시집 『성벽』 출간은 중앙인서관에서 모의되었던 것이다.
판권란에는 저자의 도장을 찍는 것이 관례인데, 오장환의 첫시집 『성벽』의 판권은 날개를 펼친 새 문양 판화를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오장환이 부러워한 일본의 ‘한정판구락부’에서 펴낸 보들레르 시집(三好達治 訳, 『悪の華』, 日本限定版倶楽部, 1935)의 표지 그림을 참고로 하여 만든 문양으로 보인다.
오장환은 시집 『성벽』을 100부 한정판으로 고급스럽게 만드는 데 일본의 한정판 출판을 참고했던 것 같다. 미요시 타쓰지(三好達治)가 번역한 보들레르의 『악의 꽃(悪の華)』(日本限定版倶楽部 1935刊)은 3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이전에도 일본에서는 특제본을 만드는 비블리오매니아 그룹이 존재해 왔다. 예를 들면 이와사토 이치로(岩佐東一郎)의 시집 『제일(祭日)』(泰文社, 1925년 3월)의 경우 가장판(家蔵版) 150부, 즉 특제(特製) 백혁표지(白革表紙) 5부[1번~5번], 상제(上製) 국지표지(局紙表紙) 145부[6번~150번]를 찍었다고 한다. 일본의 김광식 님이 일본에서 보들레르의 악의 꽃의 번역 상황과 특제본 현황을 조사해서 알려주었다. 감사드린다.
오장환은 이런 현황을 숙지하고 특제, 상제, 한정본 시집들을 구하는 애서가이자 책을 직접 만드는 제작자이기도 했다.(해제: 정우택)
접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