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내설악 백담사에서 쓰여져서 1926년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간행했고, 1934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서 재판했다. 광복 후 1950년에 다시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재간되었으나, 초판 및 재판과는 크게 달라졌다. 광복 후의 한성도서판은 초판과 재판을 기저로 했지만, 현대 맞춤법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그 뒤 이 책을 기본으로 해 유통본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유통본들에서 오류가 답습되고 있다. 이러한 오류는 『한용운전집』(1973)과 송욱(宋稶)의 『님의침묵 전편해설』(1974)에 와서 많이 시정되었으나 여기에서도 간혹 오류가 발견된다.
시집 『님의침묵』의 구성은 앞에 ‘군말’과 뒤에 ‘독자에게’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군말’에는 창작동기가 제시되어 있다.
본문은 「님의침묵」을 비롯하여, 「알 수 없어요」·「자유정조(自由貞操)」·「복종」 등 모두 88편의 시가 기승전결의 극적 구성을 취한 연작시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이것은 첫 시 「님의침묵」이 기(이별의 제시), 승(이별 후의 고통과 슬픔), 전(슬픔의 희망으로의 전이), 결(만남의 성취)이라는 전개 과정을 지닌 것과 대응된다.
즉, 시집 『님의침묵』은 88편의 시가 대체로 기(이별의 시편), 승(슬픔과 고통의 시편), 전(희망으로의 전환시편), 결(만남을 향한 시편)이라는 연작시와 같은 구성방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첫 시 「님의침묵」에서의 첫 구절은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갓슴니다.”라는 이별의 시로 시작되어, 끝 시 「사랑의 끗판」에서의 마지막 행이 “녜 녜 가요 이제 곳 가요.”라는 만남의 시로 귀결되는 특징을 지닌다.
시의 본문 뒤에 붙어 있는 ‘독자에게’는 탈고 소감을 적어놓은 일종의 후기인데, 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러한 시집의 구성방식은 ‘원저자 서언-목차-시 본문(84편)-독자여 이로부터’로 짜여진 타고르(Tagore, R.)의 시집 『원정(園丁)』을 참고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시집 『님의침묵』이 간행되기 전인 1924년에 번역시집 『원정』이 출판되었으며, 한용운 자신이 이미 『유심(惟心)』 등에서 타고르의 글을 적극 소개한 점, 그리고 시집 속에 「타고르의 시 Gardenisto를 읽고」라는 시가 실려 있는 점 등이 그 방증이 된다.
창작 동기는 민족항일기인 1920년대의 혹심한 언론 탄압 내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에 문학적으로 저항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라는 비유 내지 상징양식을 통해서 보다 높은 정신적 차원에서 문학적 저항을 시도한 것이라 하겠다. 이 점은 “해저믄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라는 ‘군말’에 극명(克明)히 제시되어 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구절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연인만이 임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연인일 수도 있지만 ‘길을 잃은 어린양’, 즉 당대 식민지하에서 방황하는 민족의 모습일 수도 있으며, 또한 빼앗긴 조국의 모습이기도 하고, 아울러 실현되지 않고 있는 이념이거나 진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님’은 연인이라는 개인적 의미일 수도 있고, 조국·민족 등의 규범적 의미일 수도 있으며, 정의·진리 등의 이념적·지향적 의미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시집의 형상적 우수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전체적인 내용은 이별이나 사랑의 고통 그 자체를 노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별과 그 고통 속에서 참다운 삶의 의미를 깨닫고, 마침내 임과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함으로써 크고 빛나는 만남을 성취한 생성과 극복의 시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님의침묵’이라는 표제에서 침묵의 의미는 단순한 명상의 침묵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몸부림과 깨달음이 용솟음치는 생성의 적극적 침묵인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남녀간의 아기자기한 사랑의 애환을 노래하면서, 그 심층에 당대의 빼앗긴 현실과 민족을 되찾으려는 끈질긴 극복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성과 사상성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성취하고 있다. 임을 상실한 아픔과 비극적 현실의 쓰라림을 기다림과 희망의 철학, 사랑과 평화의 사상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방법론적인 면에서의 특징은 은유와 역설을 탁월하게 구사함으로써 현대시적인 면모를 확보한 데서 드러난다. 시단의 형성 단계인 1920년대 중반에 독창적인 은유와 역설을 시의 중심 방법으로 삼아 적극 계발함으로써 우리 현대시의 한 기점이 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또한, 시어에서 충청도 방언을 활용하고 개인 시어를 구사한 것도 민중적 정감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며, 특히 독창적인 시 형태를 개척한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지금까지 한용운의 시는 산문시라고 막연히 불려져왔다. 그러나 그의 시는 행과 연의 구성이 독자적인 법칙과 체계를 지닌다는 점에서 산문시가 아닌 자유시의 전형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미지면에 있어서도 식물적 이미지, 광물적 이미지, 천체적 이미지 등을 섬세하게 조형하여 시적인 심미감을 고양시켜주는 특징을 지닌다. 시사적인 면에서도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시정신과 방법·문체·구조 등에서 전통시와 깊이 접맥되어 있기 때문이다.
향가·고려가요·시조·가사는 물론, 한시·불경에 흐르는 정신사적 형질과 시적 방법이 『님의침묵』에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육당시(六堂詩)·소월시(素月詩) 등 당대의 시와도 폭넓은 상관관계가 인정되며, 이육사(李陸史)·조지훈(趙芝薰)·서정주(徐廷柱) 등 후대의 시와도 영향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정신과 방법을 현대적인 것으로 확대, 심화시킴으로써 현대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님의침묵』이 성취한 사랑·자유·평등·평화의 깊이 있는 사상성과 방법론적인 예술성의 조화야말로 이 땅 현대시의 바람직한 지평이 된다 하겠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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