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뎡』은 1913년 12월 15일 新文社에서 창간한 여성잡지이다. 편집겸발행인은 타케우찌[竹內錄之助]이며 분량은 50면 내외, 표기는 순국문이다. 이 잡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발행인 타케우찌와 신문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타케우찌는 한 마디로 1910년대 대표적인 잡지 출판인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는 1913년 3월 『新文世界』를 창간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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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뎡』은 1913년 12월 15일 新文社에서 창간한 여성잡지이다. 편집겸발행인은 타케우찌[竹內錄之助]이며 분량은 50면 내외, 표기는 순국문이다. 이 잡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발행인 타케우찌와 신문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타케우찌는 한 마디로 1910년대 대표적인 잡지 출판인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는 1913년 3월 『新文世界』를 창간한 뒤, 4월 새로이 『新文界』를 창간하여 1917년 3월까지 결호 없이 매달 발행하여 통권 48호를 낸 뒤, 동경으로 무대를 옮겨 1917년 4월부터는 『半島時論』을 1919년 4월까지 통권 29호를 발행하였다. 『新文界』와 『半島時論』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그의 잡지출판 태도는 한 마디로 일제 식민정책 및 황민화의 찬양과 선동에 앞장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자 현재 남아 전하는 『우리의 가뎡』 열두 책을 살펴보면 ‘식민정책, 황민화’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은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인데, 그 이유는 당시 부녀자들의 지식수준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창간호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창간사」에서 ‘좋은 가정이 좋은 사회, 좋은 나라를 만드는 기초이므로 깨끗하고 아름답고 새로운 가정을 만들자’고 주장하며, ‘부인은 가정의 왕으로 가정의 화목과 친애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개량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목차를 보면 큰 제목으로 ‘가정의 규범, 가정의 학술, 가정의 위생’ 셋으로 나누어 구성하였는데 많은 기사들이 필자를 밝히지 않은 채 소개되었다.
특기할 것으로는 당시 인기가 높았던 신소설 작가 최찬식의 「해안(海岸)」이 2호부터 12호까지(이후 미상) 연재되었으며, 무기명의 기사들은 대부분 『신문계』의 기자들(최찬식, 백대진 등)이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제: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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