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은 1949년 11월 1일에 창간되었다. 제호 그대로 여학생을 주 독자층으로 삼았다. 창간호는 발행인 조화영, 편집인 박목월, 인쇄인 김원식, 인쇄소 서울신문사인쇄국, 발행소 여학생사, 정가가 150원이었다. 2호(1950년 1월 10일 발행)부터는 인쇄인이 김관빈으로 바뀌고, 3호(1950년 3월 10일 발행)부터는 발행소가 여학생사, 정가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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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은 1949년 11월 1일에 창간되었다. 제호 그대로 여학생을 주 독자층으로 삼았다. 창간호는 발행인 조화영, 편집인 박목월, 인쇄인 김원식, 인쇄소 서울신문사인쇄국, 발행소 여학생사, 정가가 150원이었다. 2호(1950년 1월 10일 발행)부터는 인쇄인이 김관빈으로 바뀌고, 3호(1950년 3월 10일 발행)부터는 발행소가 여학생사, 정가가 200원으로 바뀐다. 주간은 계속 박목월이 맡았다. 이화여고 교사로 재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여학생 잡지를 기획할 수 있었던 듯 보인다. 그 외의 편집위원으로 황윤섭과 윤계현이 있었다. 현재까지는 4호(1950년 4월 16일 발행)까지만 알려졌었다. 5호(1950년 6월 발행)는 여기에 처음 소개하는 미발굴 잡지이다. 이 잡지는 창작 문예물로 유명하다. 창간호에는 정비석의 「카아네이슌」, 조지훈의 「낙엽」, 박목월의 「불국사」가, 2호에는 박계주의 「성배와 문둥이」, 김말봉의 「나의 여학생 시절」, 홍효민의 「귀족과 하녀」가 실렸다. 3호에는 김송의 「마리아 상」, 강신재의 「백조의 호수」가, 4호에는 김동명의 「소녀」, 김영수의 「가족사진」이, 5호에는 정지용 「소녀 세시기」, 최정희의 「낙화」가 실렸다. 임옥인의 「오솔길」과 박계주의 「소녀여 별과 함께」는 창간호부터 연재되었다. 이외에도 이은상, 손소희, 전숙희, 이상춘, 최영수 등의 이름이 보인다. 이 잡지는 아름다운 삽화로도 유명하다. 『청록집』에서 인연을 맺었던 김의환 화백이 그렸다. (해제: 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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