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0월부터 1934년 5월까지 발행되었다. 판형은 대체로 A5판이었으나 중기에는 한동안 B5판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방정환(方定煥)이 색동회를 조직해 아동문화운동을 전개한 데 자극을 받아 나오게 되었다. 신명균(申明均)·김갑제(金甲濟)·이주홍(李周洪)이 주로 편집을 맡았는데, 편집체재는 얼핏 보기에 당시 일본의 소년지인 『소년구락부(少年俱樂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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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0월부터 1934년 5월까지 발행되었다. 판형은 대체로 A5판이었으나 중기에는 한동안 B5판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방정환(方定煥)이 색동회를 조직해 아동문화운동을 전개한 데 자극을 받아 나오게 되었다. 신명균(申明均)·김갑제(金甲濟)·이주홍(李周洪)이 주로 편집을 맡았는데, 편집체재는 얼핏 보기에 당시 일본의 소년지인 『소년구락부(少年俱樂部)』나 『일본소년(日本少年)』과 비슷했다.
초기에는 한자의 노출이 많은 것으로 보아 『어린이』지보다 정도를 좀 높인 듯했으나 1926년부터는 한자의 괄호 처리가 늘어났다.
뚜렷한 창간취지나 지향점을 내세우지는 않았으나, 초기에는 일본의 문학적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고, 중기에는 소극적인 민족주의에 계급의식이 가미된 중간적 경향을 띠었으나 말기에 이르면서 『별나라』와 더불어 적극적인 계급주의 경향으로 기울었다.
주로 이 잡지를 통해서 활동한 문인들로는 이호성(李浩盛)·신명균·맹주천(孟柱天)·김석진(金錫振)·마해송(馬海松)·연성흠(延星欽)·고장환(高長煥)·정열모(鄭烈模)·권환(權煥)·정지용(鄭芝鎔)·이주홍 등이 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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