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정』은 『신여성』, 『여성』과 함께 일제 강점기 3대 여성잡지로 꼽히는 대표적인 매체이다. 이렇게 중요한 잡지이기 때문에 『신가정』은 이미 1983년 문연각에서 전6책으로 문예면만 발췌하여 영인본을 냈으나 발췌본이라 자료 이용에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몇 해 전인 2012년 도서출판 청운이란 곳에서 전14책으로 영인본을 냈는데, 이 영인본에도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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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가정』은 『신여성』, 『여성』과 함께 일제 강점기 3대 여성잡지로 꼽히는 대표적인 매체이다. 이렇게 중요한 잡지이기 때문에 『신가정』은 이미 1983년 문연각에서 전6책으로 문예면만 발췌하여 영인본을 냈으나 발췌본이라 자료 이용에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몇 해 전인 2012년 도서출판 청운이란 곳에서 전14책으로 영인본을 냈는데, 이 영인본에도 1934년 12월호와 1936년 7월부터 9월호까지 누락되어 있다.
『신가정』은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하던 『신동아』의 발행처 신동아사에서 1933년 1월 1일 창간호를 낸 후 약 3년 반 동안 발행되다가 1936년 9월 제4권 9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저작겸발행인은 동아일보사의 지배인인 양원모, 창간 당시 편집인은 이은상이었다. 1931년 창간된 『신동아』를 필두로 『중앙』『조광』이 상보적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 발전해나갔던 것처럼, 종합지였던 『신동아』의 자매지 형태로 『신가정』이 탄생한 것이다.
창간호를 보면 분량 190면에 정가가 20원이었으니 당시 여타의 여성지가 100여 면에 20전이었던 것에 비하면 반절이나 싼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동아일보사라는 거대자본과 풍부한 인력이 뒷받침되어 가능했을 것이다. 창간호 목차를 보면 필자 70명의 80꼭지 글이 실려 있어 집필자 동원력을 쉽게 알 수 있고, 신문사의 설비를 이용한 화려한 사진화보와 청전 이상범 화백의 표지화, 권두화 등 여러 면에서 타 잡지와는 차별화되었다. 그러나 『신가정』은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인해 『신동아』가 강제 폐간되면서 운명을 같이 하고 말았다. (해제: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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