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3월에 창간된 『성애』는 성 담론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선구적인 자료이다. 월간으로 기획되었지만 창간호는 유실되었고 3호부터는 발간 여부가 불확실하다. 현재 실물이 확인되는 것은 여기에 소개하는 2호 재판본뿐이다. 2호는 재판을 찍을 정도로 판매고가 높았던 듯하다. 1924년 4월 5일에 초판을 발행하고 1924년 4월 10일에 재판을 다시 발행했다. 2호 판권을 살피면, 편집겸발행인은 윤석중(尹石重), 인쇄인은 심우택(沈禹澤), 인쇄소는 대동인쇄주식회사, 발행소는 성애사이고 정가는 다른 잡지들보다 조금 비싼 40전이다. 표지 장정은 최우석(崔禹錫) 화백이 그렸다. 게재된 글은 대부분 근대 생리학과 성과학, 연애 담론, 가정생활, 정조관념에 대한 논설과 기사, 문예물이다. 윤석중을 제외하고는 모두 필명을 썼다.
「권두언」을 쓴 광파(狂波, 발행인 윤석중)은 과격한 어조로 희생과 자기부정, 절대 순종을 부덕이라는 미명하에 강제했던 구래의 인습주의에 반역하라고 당대 여성들을 선동하면서, 『성애』는 그러한 여성들에게 가장 굳센 후원자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여성에게만 강요되던 정조관념의 편향성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개성에 대하여 충실함이 인습적 도덕관념에 대하야 충실함보다 자기의 행복을 위하야 한층 더 유의할 것이라는 관념으로써 도덕의식의 근본 기초를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급진적 성 담론을 실은 잡지가 검열에 자유로울 리 없었다. 「편집여언」을 살피면 창간호가 한 달이나 늦게 나온 이유, 많은 부분이 삭제된 이유, 이번 2호도 마찬가지인 이유가 모두 당국의 검열 때문이라고 토로한다. 창간호에 대한 독자 반응도 극렬히 대비된다고 밝힌다. 한편에 열렬한 애독자 층이 형성되었던 반면, 일부 양반들은 통렬한 욕지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편집진은 후자에 대해서 탈바가지를 쓴 가면이거나 낡은 도덕에 미혹된 환자라고 일소에 붙인다. (해제: 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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