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학회는 국민교육회, 대한자강회, 황성기독교청년회와 전현직 무관그룹 등을 기반으로 1906년 10월 관서지역 단위의 단체로 조직되었다. 이들은 민족적 위기의식을 최대한 결집시켜 국권회복의 의지를 키우고 민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지역인을 대상으로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한다고 보아 각성이 비교적 빠른 관서지역에 지역단위의 단체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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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학회는 국민교육회, 대한자강회, 황성기독교청년회와 전현직 무관그룹 등을 기반으로 1906년 10월 관서지역 단위의 단체로 조직되었다. 이들은 민족적 위기의식을 최대한 결집시켜 국권회복의 의지를 키우고 민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지역인을 대상으로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한다고 보아 각성이 비교적 빠른 관서지역에 지역단위의 단체를 설립했다.
이 학회는 정치활동을 표면에 내세우지 않고 학회라는 명칭으로 교육진흥운동만을 표방했다. 그러나 실제적 목표는 ‘민력양성(民力養成)’을 통한 국권 회복과 인권 신장이었다. 즉, 서우학회는 국권회복과 국민주권의 자유독립국가를 수립하는 데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국권회복의 기초로서 국민의 실력과 단결을 중요시하여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했다.
기관지로 『서우(西友)』를 간행했다. 『서우』는 1906년 12월부터 매달 발행되어 14호까지 발행되었다. 핵심사상은 국권회복을 목표로 한 실력양성론을 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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