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여성
- 제호(잡지명)
-
- 한글보육 1호
- 한문保育 第一號
- 국한문保育 第1號
- 기타保育 創刊號
- 발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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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인林炳哲
- 인쇄인 주소漢城市 中區 太平南街 1
- 편집 겸 발행인崔明嬉
- 편집 겸 발행인 주소漢城市 東大門區 敦岩町 山39
- 출판사
- 朝鮮保育社 조선보육사
- 발행지
- 漢城市 東大門區 敦岩町 山39
- 인쇄소
- 高麗文化社工務局 고려문화사공무국
- 인쇄지
- 漢城市 中區 太平南街 1
- 창간일
- 1946년 4월 10일
- 간행일
- 1946년 4월 10일
- 인쇄일
- 1946년 4월 5일
- 통권
- 1호
- 간별
- 월간
- 형태
-
- 가로14.7cm
- 세로21cm
- 면수32page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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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가7원
해제
해방 후 일제의 잔재를 벗어나고자 하는 건국과 재건의 신념으로, 미래의 주역이 될 아동의 제1차 보육 담당자인 가정 부인, 나아가 보육 전문가와 아동문화 관계자들을 위한 월간 교육잡지이다. 해방 후 건립된 조선보육연구회 회보를 겸한 듯 보인다. 1946년 4월 10일에 창간하였는데 여기에 소개하는 창간호와 3호(1946.6.15 발행)가 유일본으로서 확인될 뿐이다. 주간 양미림(楊美林), 편집겸발행인 최명희(崔明姬), 인쇄인 임병철(林炳哲), 인쇄소 고려문화사공무국, 발행소 조선보육사이며 창간호는 임시정가 7원, 3호는 임시정가 10원이었다.
창간사와 편집후기 및 잡지 전반 업무를 도맡은 양미림은 일제 말기부터 해방기 사이에 활동했던 아동문학가로서, 1945년 12월에 결성된 조선문학동맹의 아동문학위원회(위원장 정지용) 위원 명단과 1946년 3월에 결성된 전조선문필가협회 회원 명단에서 그 이름이 확인된다. 해방 직후 간행한 『새동무』에 동명의 장편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양미림은 조선보육연구회의 주간으로서 이 잡지의 원고와 편집을 주관했다. 편집겸발행인 최명희는 당시 동대문구 돈암정 산39에 소재한 돈암유치원 원장이었다. 조선보육사는 이 유치원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잡지 사무를 보았던 모양이다. 이 잡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조선보육연구회는 이듬해 초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결성식에 참여했던 공식 단체이다. 1947년 2월 12일 종로기독청년회관에서는 조선미술협회, 전조선문필가협회, 극예술연구회, 조선보육회 등 30여 문화단체가 모여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양미림은 「창간사」에서, “일제의 가장 욕된 대접을 받아온 존재가 우리 어린이였으며 이제는 그 무서운 군국주의의 중압으로부터 동심을 회복시켜야 한다” 고 주장하면서, 특히 우리말과 우리 정신으로 어린이들을 재교육해야 한다는 사명을 피력하고 있다. 게재된 글들은 대부분 아동교육, 발달심리, 보건과 위생, 보육시설, 교수방안에 관한 이론 및 실무 정보에 관한 것이다. 교수, 교사, 의사 등 각계의 전문가뿐 아니라 유치원 교사, 보모, 자모들의 원고를 두루 실었다. 양미란, 안신영, 윤석중의 아동극, 동요 작품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해제: 신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