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학술
- 제호(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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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대동학회월보 3호
- 한문大東學會月報 3號
- 발행자
-
- 편집 겸 발행인李大榮
- 출판사
- 大同學會會舘 대동학회회관
- 발행지
- 漢城 西署 西學峴
- 인쇄소
- 京城日報社 경성일보사
- 인쇄지
- 漢城 西署 筆洞
- 창간일
- 1908년 2월 25일
- 간행일
- 1908년 4월 25일
- 인쇄일
- 1908년
- 통권
- 3호
- 간별
- 월간
-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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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수70page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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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료1행 30전, 半頁 1원 60전, 1頁 3원원
목차
논설(전호속)(論說(前號續)) _ 우산거사(藕山居士)
양기설(전호속)(養氣說(前號續)) _ 장박(張博)
공덕(公德) _ 장박(張博)
보도자항(普渡慈航) _ 김문연(金文演)
국가진보가 재국민정신(國家進步가 在國民精神) _ 조동숙(趙東肅)
축사(祝辭) _ 정교(鄭喬)
도학원류(속)(道學源流)(續) _ 신기선(申箕善)
종교지구별(宗敎之區別) _ 원영의(元泳義)
죄형에 관 법정주의(罪刑에 關 法定主義) _ 법률독서인(法律讀書人)
인격의 관념급요소(人格의 觀念及要素) _ 법률독서인(法律讀書人)
경제서를 독다가 유자의 현상을 탄홈(經濟書를 讀다가 儒者의 現狀을 歎홈) _ 유승겸(兪承兼)
법학용어해(法學用語解) _ 권보상(權輔相)
국력(國力) _ 김대희(金大熙)
화학(化學) _ 백악산인(白岳山人)
석언(石言) _ 우산거사(藕山居士)
애국설(愛國說) _ 우산거사(藕山居士)
격구설시제생(擊毬說示諸生) _ 고심생(苦心生)
하화생일(荷花生日) _ 적정생(菂庭生)
이월염사 한국황태자견방아 황태자어엽산리궁관매어남원의욕배종공부이헌(二月念四 韓國皇太子見訪我 皇太子於葉山離宮觀梅於南苑毅辱陪從恭賦以獻 _ 삼도의(三島毅)
우음(偶吟) _ 황세하(黃世夏)
관보적요(官報摘要)
외보(外報)
본회 기사(本會記事)
제2회 강연회 강의록(第二回 講硏會 講義錄)
회원록(會員錄)
해제
대동학회는 1907년 3월 설립된 친일 유교 단체이다. 전국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유림계를 친일화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따라 1907년 3월 신기선, 이용직 등이 중심이 되어 유도(儒道)로서 체(體)를 삼고 신학문으로 용(用)을 삼아 신구의 사상을 합일시킨다는 목적을 내세우며 설립되었다.
대동학회가 추진한 사업은 경전(經典)을 강명(講明)해 도덕을 존숭(尊崇)하는 일, 신지식이 발달한 서적을 비치해 강습(講習)을 자(資)하는 일, 수신 처세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 신금강연소(神衿講硏所) 수 처를 설치하는 일, 학교를 설치해 동지(同志) 자제(子弟)를 교육하는 일, 이용후생(利用厚生)에 관한 실업을 흥기(興起)하는 일, 강의록과 회보와 잡지를 발간하는 일, 도서관을 지어 공중의 열람을 제공하는 일, 기타 본회의 유익한 사업을 점차 확장하는 일 등이었다.
이러한 설립 목적에 따라 대동학회는 일요일마다 명망 있는 인사들을 초빙해 순회 강연을 실시했다. 또한, 학회 내에 편집부를 설치하고 1908년 2월부터 『대동학회월보(大東學會月報)』를 발간해 유교, 법학, 경제, 실업 등 다양한 주제의 기사를 실었으며, 1909년 9월 통권 20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1908년 3월 대동학회 회관 안에 대동전문학교(大東專門學校)를 설립하고 신입생 235명을 선발하여 개교했다. 1909년 봄, 1년 과정의 속성과는 50명의 학생을 졸업시킨 후 폐과되었고 본과만 신입생을 선발했다. 졸업생은 관리, 교육계, 변호사, 사무원 등으로 활동했다.
대동학회는 신기선에 대한 비난 여론과 학회 내 갈등 등으로 인해 활동이 저조해지기 시작했다. 1909년 2월 회장 신기선이 사망하면서 학회가 폐지될 위기에 놓이게 되자 1909년 10월 공자교(孔子敎)로 개칭했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관련자료
- 3~7, 9호는 복사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