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종합지
- 제호(잡지명)
-
- 한글개벽 5호
- 한문開闢 5號
- 발행자
-
- 발행인이두성
- 발행인 주소경성부 이화동 36번지
- 편집인이돈화
- 편집인 주소경성부 간동 60번지
- 인쇄인민영순
- 인쇄인 주소경성부 청수정 8번지
- 출판사
- 開闢社 개벽사
- 발행지
- 京城 경성부 송현동 34번지
- 인쇄소
- 新文館 신문관
- 인쇄지
- 경성부 황금정 2정목 21번지
- 발매지
- 京鄕各書鋪 경향각서포
- 창간일
- 1920년 6월 25일
- 간행일
- 1920년 11월 1일
- 인쇄일
- 1920년 10월 29일
- 통권
- 5호
- 간별
- 월간
- 가격
-
- 기타42전
목차
권두언
朝鮮人의 民族性을 論하노라 _ 李敦化
各民族의 顔面角度
外來思想의 吸收와 消化力의 如何 _ 滄海居士
[무제]
農村改善의 緊急動議 _ 金起廛
世界와 共存키 爲하야 敎育問題를 再擧하며 爲擧 書堂改良을 絶叫함 _ 朴達成
새상놈 새량반 _ 한별
祭祀問題를 機會로 하야 靈魂問題를 一言하노라 _ 猪巖
洪景來와 全琫準 _ 白頭山人
人乃天의 硏究 (續) _ 夜雷
胡適氏를 中心으로한 中國의 文學革命, 最近發行된 「支那學」雜誌에서 _ 梁白華
近代主義의 第一人 루소先生 _ 妙香山人 (記)
[무제]
各民族成年人의 平均身丈
新詩 _ 吳相淳
人類學에 對한 槪念 _ 一記者
나의 본 朝鮮習俗의 二三 _ 姜仁澤
諸名士의 朝鮮女子 解放觀에 對한 余의 疑問 _ 辛泰嶽
[무제]
最近의 詩壇(月評), -羊鳴 步星, 耀翰, 春園, 春城 諸君의 詩를 읽고 _ 黃錫禹
[무제]
빠이론 詩集, 離別의 1節
京城市內의 現行童謠
나의 귀와 不平의 소리 _ 强我之
讀者交情欄
文林 甲乙丙丁
산아이거든 풋뽈을 차라 _ 金源泰
漢詩
望鄕在江戶 _ 잔물
偉人의 獅子吼(其二) _ 小春
淸秋의 逍遙山 _ 朴春坡
浮雪道人의 八竹頌
어둔운 밤 _ 春城
[무제]
[무제]
玄堂獨吠, 第四說 戱曲의 槪要 _ 曉鍾生
文藝의 目的
犧牲花 _ 憑虛 玄鎭健
脚本 隔夜(第三幕) _ 玄哲
編輯을 마치고서
해제
천도교단(天道敎團)에서 민족문화실현운동으로 세운 개벽사(開闢社)에서 1920년 6월 25일 창간호를 발간했다. 천도교는 항일운동과 신문화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중, 민족문학 수립과 민족전통 문화유산 확립을 기본으로 언론·학술·종교·문예를 게재하는 종합월간지를 발간하기로 하고, ‘후천개벽사상’에서 이름을 따 ‘개벽사’를 창업하고 『개벽』을 발간하게 된 것이다.
창간 당시 사장은 최종정(崔宗禎), 편집인은 이돈화(李敦化), 발행인은 이두성(李斗星), 인쇄인은 민영순(閔泳純) 등이었다. 창간 이유는 “세계사상을 소개함으로써 민족자결주의를 고취하며, 천도교사상과 민족사상의 앙양, 사회개조와 과학문명 소개와 함께 정신적·경제적 개벽을 꾀하고자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체 지면의 약 3분의 1을 문학과 예술면으로 할애하여 소설·시조·희곡·수필·소설이론·그림 등을 게재하였고, 문체는 국한문혼용체를 썼다.
그러나 창간호는 발간과 동시에 표지(호랑이 그림)와 「금쌀악」·「옥가루」 등 몇몇 기사가 문제가 되어 일제에게 전부 압수되고 말았다. 이에 문제가 된 기사를 삭제하고 호외(號外)를 냈으나 이것마저 압수되어 다시 임시호(臨時號)를 발행했다. 그 뒤에도 시련은 계속되었고, 결국 1926년 8월 1일 통권 제72호(8월호)를 끝으로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폐간되었다. 폐간될 때까지 발매금지(압수) 40회 이상, 정간 1회, 벌금 1회 등 많은 압력과 박해를 받았으며, 그로 인한 경영난도 심각했다.
1934년 11월 차상찬(車相讚)이 『개벽』을 속간하여 제1호부터 제4호까지 내었으나, 1935년 3월 1일 다시 폐간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전의 『개벽』과 성격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었다. 광복 후 1946년 1월 김기전(金起田)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개벽』을 복간하여, 1926년에 폐간된 『개벽』의 홋수를 이어 제73호부터 시작하여 1949년 3월 25일(통권 제81호)까지 모두 9호를 발행하고 자진 휴간했다.
최근 일제에 의해 압수·삭제된 149개의 기사 중 기존 영인본에서 누락되었던 21개의 기사(작품) 원문이 한 연구서의 부록으로 간행되었다.
『개벽』의 기사 영역은 종교·사상·정치·경제·산업·역사·천문·지리·문학·미술·음악·제도·기술·풍속·풍물·인물·시사 등을 아우르고 있으며, 현란하고 화려한 광고들에서 보듯이 유통되는 상품 내지 근대문물 전체에 관심을 갖고 있을 정도로 종합지적인 개방성을 보였고, 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특히 천도교 조직사업의 일환으로 발행했던 잡지인 『개벽』에 종교적인 글이 별반 실리지 않았던 반면, 다른 신문과 잡지에 비교해보더라도 문예에 대한 지면 할애가 두드러졌다는 점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개벽』은 1900년대 당시 계급주의적 경향문학을 지향하던 신경향파 초기의 작가들을 많이 배출하여, 지면의 3분의 1에 달하는 문예면에 그들의 작품을 게재했다. 김기진(金基鎭)·박영희(朴英熙) 등의 평론가, 조포석(趙抱石)·현진건(玄鎭健)·김동인(金東仁)·이상화(李相和)·염상섭(廉想涉)·최서해(崔曙海)·박종화(朴鍾和)·주요섭(朱耀燮) 등의 문인들이 주로 『개벽』을 무대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김유정(金裕貞)도 단편소설을 1편 발표했다.
그밖에 노수현(盧壽鉉)·김은호(金殷鎬)·이상범(李象範)·오일영(吳一英)·김응원(金應元)·고희동(高羲東) 등의 그림도 자주 소개하였고, 강암(剛菴)·운양(雲養)·성당(惺堂)·석정(石汀)·긍제(兢齊) 등의 서예도 소개했다.
민족항일기의 『개벽』은 일제의 정책에 항거하여 정간·발행금지·벌금, 그리고 발행정지 등의 가혹한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민족의식 고취에 역점을 둔 대표적인 종합잡지이다. 뿐만 아니라, 문예잡지 못지않게 문학이론의 전개, 문학작품의 발표, 외국문학의 소개, 신인 발굴 등 다각적인 배려를 함으로써, 1920년대 문학창달에 기여한 바가 커서 이 시기 문학연구에 귀중한 문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