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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구분
잡지 > 사회주의
제호(잡지명)
  • 한글주보 신생활 15호
  • 한문週報 新生活 15號
발행자
  • 인쇄인김중환
  • 편집 겸 발행인박희도
  • 편집 겸 발행인 주소경성부 견지동 80번지
출판사
新生活社 신생활사
발행지
京城 경성부 견지동 80번지
인쇄소
大東印刷株式會社 대동인쇄주식회사
인쇄지
경성부 공평동 55번지
간행일
1922년 12월 23일
인쇄일
1922년
통권
15호
간별
주간

표지화 (삽화,컷)

해제

1922년에 창간된 사회주의 순간(旬刊) 잡지. 6호부터는 월간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순간으로 간행했다. 10호부터는 주간으로 발행되었다. 3·1운동 때 민족대표의 한 사람이었던 박희도(朴熙道)가 미국인 선교사 베커(Beker, 白熙德)를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내세워 창간했다. 박희도는 황해도 해주의 이승준(李承駿) 등의 출자로 무산대중의 개조와 혁신이라는 기치 아래 신생활사를 설립했다.
창간호가 나오자 곧 발매금지가 되었으며, 1922년 11월 14일자 제11호에서 특집으로 발간한 ‘노국(露國)혁명5주년기념호’가 다시 발매금지되었다. 이때 사장 박희도 및 인쇄인 노기정(盧基禎) 두 사람이 구속되었고 인쇄기도 봉인되어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뒤 주필 이하 다수의 집필자가 검거, 기소되어 1923년 1월 8일 전원 2년 6월 내지 1년 6월의 징역이 선고되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관계 재판이었다.
당시 문제가 된 논문은 김명식(金明植)의 <러시아혁명기념>, 유진희(劉鎭熙)의 <민족운동과 무산계급의 전술>, 이항발(李恒發)의 <자유노동조합결성의 취지>등이었다. 같은 날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 잡지인 ≪신생활≫은 발행금지의 처분을 당하고 말았다. (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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