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대중
- 제호(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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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삼천리 4권 12호
- 한문三千里 4卷 12號
- 기타三千里 十二月號
- 발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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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인韓東秀
- 인쇄인 주소京城府 黃金町 3丁目 251
- 편집 겸 발행인金東煥
- 편집 겸 발행인 주소京城府 貫鐵洞 59
- 출판사
- 三千里社 삼천리사
- 발행지
- 京城府 貫鐵洞 59
- 인쇄소
- 大盛堂印刷合資會社 대성당인쇄합자회사
- 인쇄지
- 京城府 黃金町 3丁目 251
- 발매소
- 大衆書屋 대중서옥
- 발매지
- 京城 慶雲洞
- 창간일
- 1929년 6월 12일
- 간행일
- 1932년 11월 1일
- 인쇄일
- 1932년 10월 30일
- 권호
- 4권 12호
- 간별
- 월간
- 형태
-
- 면수100page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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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이 땅우에 둥주리치라 _ 파인
삼천리(三千里)뉴-스
최근 반도(最近半島)의 내외빈객(內外賓客)
국제연맹(國際聯盟)에 제출(提出)된 리튼보고서 중(報告書中) 조선인 문제(朝鮮人問題)
재계(財界)의 괴걸 홍종화(怪傑洪鍾華)·김기덕(金基德) 양씨(兩氏), 돌현(突現)한 일천만원(壹千萬圓)의 양대 부호 일대기(兩大富豪 一代記) _ 한양학인(漢陽學人)
사고(社告) _ 삼천리사 주간
제6회 전선변호사대회기(第6回 全鮮辯護士大會記) _ 신태악(辛泰嶽)
외국의 대표적 신문관(外國의 代表的 新聞觀) _ 이관용(李灌鎔)
만주국 유기(滿洲國 遊記) _ 안동현(安東縣)에서 임원근(林元根)
그리운 우리 정조(情調)
해외활약중(海外活躍中)의 백의사관(白衣士官)
그리운 우리 정조(情調)
참정권(參政權)과 학생(學生) _ 허헌(許憲)
종로(鐘路)네거리
여재판관(女裁判官) _ 허수만(許秀萬)
소화(笑話)
독일국 십계(獨逸國 十戒)
사고(社告)
비율빈의 열혈시인(比律賓의 熱血詩人) 돈,흐세―,리사―루씨(氏) _ 새밝
동반자작가의 제문제(同伴者作家의 諸問題) _ 이갑기(李甲基)
그리운 우리 정조(情調)
여행중(旅行中)에 맛낫든 잇지못할 이성(異性)
여성(女性)이 본 명사제씨(名士諸氏) 초인상(初印象)
쏘비엣로서아행(露西亞行), 구미유기(歐米遊記)의 기일(其一) _ 나혜석(羅蕙錫)
중국비행학교(中國飛行學校) 지원(志願)하는 고국청년(故國靑年)에게 _ 남경(南京) 김련기(金鍊器)
그리운 우리 정조(情調)
수표교반음(水標橋畔吟) _ 파인
회상의 일절(回想의 一節), 동소문(東小門)박 만추풍경(晩秋風景)에 싸여서 _ 최정희(崔貞熙)
푸로와 뿌르여학생(女學生)의 정조(貞操)와 연애관(戀愛觀)
소화(笑話)
실화(實話)-호반(湖畔)의 괴여성(怪女性) _ 남경(南京) 독일의학박사(獨逸醫學博士) 이성용(李星鎔)
삼천리(三千里)뉴-쓰
은막의 여왕(銀幕의 女王) 마르레네 데―트릿치와 「그레타 칼보」의 출세전(出世傳) _ 경도(京都), 동활 박기변(東活 朴基釆)
문예시평(文藝時評) _ 동경(東京) 이원조(李源朝)
문단잡화(文壇雜話)
여자란 것은
마을과 백성(百姓)들 _ 적구(赤駒)
북풍래(北風來)! _ 황석우(黃錫禹)
적막한 저녁(제2회(第二回)) _ 김동인(金東仁)
서해(曙海)와 일화(逸話) _ 남우훈(南又薰)
최박사의 양심(良心)(전호속(前號續)) _ 이종명(李鍾鳴)
편집후기(編輯後記) _ 파인
12월호(月號)를 내면서 독자제씨(讀者諸氏)에 급고(急告)
시급(時急) 뉴-쓰, 조선(朝鮮), 중앙(中央), 양 신문(兩新聞) 부활내막(復活內幕), ―오랫동안 잠겻든 문이 엇더케 열려젓나― _ 창랑객기(滄浪客記)
삼천리사에 송금주의(三千里社에 送金注意)
해제
1929년에 취미와 시사 중심의 대중지 성격으로 발행한 교양 잡지. 편집인 겸 발행인은 김동환(金東煥)이며, 삼천리사(三千里社)에서 발행했다.
1929년 6월 창간되어 월간·격주간 등으로 B5판, B4판 또는 A5판으로 간행되다가, 『대동아(大東亞)』로 제명을 고쳐 1942년 3월과 7월 두 호를 더 내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급한 취미로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에 치중해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特種)을 잘 포착해 지상(誌上)에 곧 반영시켰다.
우리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작가 여럿이 집필한 「문예강좌」와 김동인(金東仁)의 「춘원연구(春園硏究)」, 여러 중견작가의 작품연대표 등은 특기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과장과 공상이 지나치고 제목에 비해 내용이 빈약한 것이 커다란 흠이며, 무엇보다도 그 친일적인 성격 때문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초기는 민족적 입장에 섰으나 1937년 이후부터 점차 친일적인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해, 마침내는 친일파 · 민족반역자를 등장시켜서 반민족적 잡지로 전락했고, 끝내는 친일 잡지 『대동아』로 개명까지 했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