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대중
- 제호(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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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삼천리 4권 3호
- 한문三千里 4卷 3號
- 기타三千里 三月號
- 발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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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인韓東秀
- 인쇄인 주소京城府 黃金町 3丁目 251
- 편집 겸 발행인金東煥
- 편집 겸 발행인 주소京城府 貫鐵洞 59
- 출판사
- 三千里社 삼천리사
- 발행지
- 京城府 貫鐵洞 59
- 인쇄소
- 大盛堂印刷合資會社 대성당인쇄합자회사
- 인쇄지
- 京城府 黃金町 3丁目 251
- 발매소
- 株式會社 以文堂 주식회사 이문당
- 발매지
- 京城 寬勳洞
- 창간일
- 1929년 6월 12일
- 간행일
- 1932년 3월 1일
- 인쇄일
- 1932년 2월 29일
- 권호
- 4권 3호
- 통권
- 25호
- 간별
- 월간
- 형태
-
- 면수112page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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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지상 삼천리전체회의(誌上 三千里全體會議), 제1부문=민족문제, 현하의 민족주의세력과 사회주의세력(第一部門=民族問題, 現下의 民族主義勢力과 社會主義勢力)
사고(社告) _ 편집국(編輯局)
지도단체와 지도이론 확립론(指導團體와 指導理論確立論) _ 원세훈(元世勳)
민족과 계급관계의 구명(民族과 階級關係의 究明), -나의 BAC적(的) 멧가지- _ 춘곡(春谷)
민족보건문제, 민중보건과 체육보편화의 급무(民族保健問題, 民衆保健과 體育普遍化의 急務) _ 조선체육연구회 주사(朝鮮體育硏究會主事) 김보영(金保榮)
조선민중보건운동의 방략(朝鮮民衆保健運動의 方略) _ 보건운동사 주간(保健運動社主幹) 양봉근(楊奉根)
차대의 지도자 총관(次代의 指導者 總觀)
사고(謝告) _ 삼천리편집국(三千里編輯局)
삼천리 「벽신문」(三千里壁新聞) 재만동포구제금(在滿同胞救濟金)
동란의 도시(動亂의 都市) 상해(上海)의 푸로필 _ 홍양명(洪陽明)
소화(笑話)
표현단체 재수립의 정체(表現團體 再樹立의 正體), 안재홍(安在鴻) 코-쓰 비판(批判) _ 진영철(陳榮喆)
사고(社告)
소화(笑話)
대통령선거전과 세계정국(大統領選擧戰과 世界政局)
조선여자고등교육문제(朝鮮女子高等敎育問題) _ 이화여자전문학교장(梨花女子專門學校長)=아펜설라
교차점(交叉點)
파리(巴里)의 모델과 화가생활(畵家生活) _ 동경(東京) 나혜석(羅蕙錫)
유명인사 삼형제 행진곡(有名人士 三兄弟 行進曲), 민목식씨 삼형제(閔木植氏 三兄弟), 김성수씨 삼형제(金性洙氏 三兄弟), 최남선씨 삼형제(崔南善氏 三兄弟), 장덕수씨 삼형제(張德秀氏 三兄弟) _ 유광열(柳光烈)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재만조난동포근황(在滿遭難同胞近況)
교차점(交叉點)
십만평 평야에 건설되는 여인집단농장(十萬坪 平野에 建設되는 女人集團農場), 황해도 산골에 땅 십만평을 사드려 리상촌을 건설하고저 동서분주중
막사과의 회상(莫斯科의 回想) _ 김세용(金世鎔)
김약수씨(金若水氏)에게 보내는 편지(便紙) _ 박석홍(朴錫洪)
학창(學窓)을 떠나러는 여학생(女學生)의 결혼조건(結婚條件), -그들의 꿈은 엇더한가-
나온 이유(理由)
항구정조와 여성(港口情調와 女性) _ 안서(岸曙)
김립 시(金笠 詩) _ 이응수(李應洙)
연극독자의 가치(演劇獨自의 價値) _ 홍해성(洪海星)
가 보고 십흔 곳 맛나 보고 십흔 사람
황후의 보석(皇后의 寶石)
와싱톤의 고별사(告別辭)
인력거부와 급수부(人力車夫와 汲水夫) 손으로 건설(建設)되는 「무산학원(無産學院)」 웅자(雄姿)-서울 가회동에 운소에 소슨 건물-, 노동자의 열성(勞働者의 熱誠)으로 되는 대동학원(大東學院)!
남편 김좌진의 초혼(男便 金佐鎭의 招魂), 미망인 나혜국여사의 방문기(未亡人 羅惠國女史의 訪問記)
그럴 듯
인도양상(印度洋上) 마도로스 되어 _ 홍운봉(洪雲鳳)
이민족간 연애의 비극(실화삼편)(異民族間 戀愛의 悲劇)(實話三篇)
삼월(三月)의 문예
문인초인상(文人初印像)(2) _ 여기자(女記者)
연애편지 인쇄해서 공개(戀愛片紙印刷해서 公開), 영국의 문학비평가(英國의 文學批評家) 쇼―옹(翁)이
자서전대(自叙傳代)로 _ 김일엽(金一葉)
오리온과 림금(林檎) -「림금의 기교(林檎의 技巧)」 중(中)의 한 편(篇)- _ 이효석(李孝石)
가두연락(街頭連絡)의 첫날 _ 송계월(宋桂月)
감사(感謝)와 사죄(謝罪)
해제
1929년에 취미와 시사 중심의 대중지 성격으로 발행한 교양 잡지. 편집인 겸 발행인은 김동환(金東煥)이며, 삼천리사(三千里社)에서 발행했다.
1929년 6월 창간되어 월간·격주간 등으로 B5판, B4판 또는 A5판으로 간행되다가, 『대동아(大東亞)』로 제명을 고쳐 1942년 3월과 7월 두 호를 더 내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급한 취미로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에 치중해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特種)을 잘 포착해 지상(誌上)에 곧 반영시켰다.
우리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작가 여럿이 집필한 「문예강좌」와 김동인(金東仁)의 「춘원연구(春園硏究)」, 여러 중견작가의 작품연대표 등은 특기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과장과 공상이 지나치고 제목에 비해 내용이 빈약한 것이 커다란 흠이며, 무엇보다도 그 친일적인 성격 때문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초기는 민족적 입장에 섰으나 1937년 이후부터 점차 친일적인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해, 마침내는 친일파 · 민족반역자를 등장시켜서 반민족적 잡지로 전락했고, 끝내는 친일 잡지 『대동아』로 개명까지 했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