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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 대중
제호(잡지명)
  • 한글삼천리 4권 2호
  • 한문三千里 4卷 2號
  • 기타三千里 二月號
발행자
  • 인쇄인韓東秀
  • 인쇄인 주소京城府 黃金町 3丁目 251
  • 편집 겸 발행인金東煥
  • 편집 겸 발행인 주소京城府 貫鐵洞 59
출판사
三千里社 삼천리사
발행지
京城府 貫鐵洞 59
인쇄소
大盛堂印刷合資會社 대성당인쇄합자회사
인쇄지
京城府 黃金町 3丁目 251
발매소
株式會社 以文堂 주식회사 이문당
발매지
京城 寬勳洞
창간일
1929년 6월 12일
간행일
1932년 2월 1일
인쇄일
1932년 1월 26일
권호
4권 2호
통권
24호
간별
월간
형태
  • 면수112page
가격

목차

토지문제의 해결을 위한 표현단체의 필요(土地問題의 解決을 爲한 表現團體의 必要) _ 김동환(金東煥)
일본에 독재정치가 실현(日本에 獨裁政治가 實現될가)
민족적 공적인 분열주의자 박멸, 지방열과 파쟁타파론(民族的 公敵인 分裂主義者 撲滅, 地方熱과 派爭打破論) _ 이종린(李鍾麟)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사고(社告)
소화(笑話)
오대학부(五大學府) 출(出)의 인재(人材) 언.파렛드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세계자본주의의 현세와 남경통치의 지위(世界資本主義의 現勢와 南京統治의 지위) _ 등연달(鄧演達)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금재금하의 조선산업계(金再禁下의 朝鮮産業界) _ 서춘(徐椿)
삽화(揷話)
민족생활구의 의의(民族生活區의 意義) _ 김명식(金明植)
그놈도 그놈이야
조선(朝鮮)푸로레타리아 문화연맹(文化聯盟)에의 결성방략(結成方畧), 현계단적 필연성(現階段的 必然性)을 논(論)함 _ 홍효민(洪曉民)
박흥식, 최남 씨 인물평, 화신 동아 양 백화점 주인(朴興植, 崔楠 씨 人物評, 和信 東亞 兩 百貨店 主인) _ 신태익(申泰翊)
춘초(春草)는 년년(年年) 록(綠)인데 그이만 가고 못 오시나? _ 유광열(柳光烈)
제호와 명명자(題號와 命名者)
명문(名門)따님 5형제 행진곡
최초의 저서(最初의 著書)
폐병사생(肺病死生) 15년 _ 이광수(李光洙)
「우리 아기날」 _ 최정희(崔貞熙)
신부의 3일간(新婦의 3日間) _ 김귀덕(金貴德)―유광열(柳光烈) 씨 부인
무산부인운동론(승전)(無産婦人運動論)(承前) _ 김은희(金銀姬)
급고(急告)
여론의 위력(輿論의 偉力)으로 마작(麻雀)을 철저히 박멸(撲滅)하자. _ 이성환(李晟煥)
사고(社告)
공산당암살단(共産黨暗殺團), 상해(上海)에서 돌발(突發)한 15명 참살사변(慘殺事變) _ 재상해(在上海) 만악천봉루 거사(萬岳千峯樓 居士)
부인문제에 대한 비판(婦人問題에 대한 批判)
고도(古都)의 봄빗
편지(便紙) 2장
삼천리사 주최 지상 청년학도웅변대회(三千里社主催 誌上 靑年學徒雄辯大會)
추억(追憶)의 한토막, 첫사랑의 회상(回想) _ 최독견(崔獨鵑)
여배우(女俳優)와 정조(貞操)와 사랑 _ 이서구(李瑞求)
신춘문예(新春文藝)
문인초인상(文人初印象)(2) _ 여기자(女記者)
『연애(戀愛)의 길』을 읽고서, ―콜론타이 여사의 작(作) _ 김안서(金岸曙)
병상음(病床吟) _ 늘샘
세멘트창고(倉庫) _ 추적양(秋赤陽)
교차점(交叉點)
에스페란토란(欄) _ 안서 김억(岸曙 金億)
신춘유감(新春有感)

해제

1929년에 취미와 시사 중심의 대중지 성격으로 발행한 교양 잡지. 편집인 겸 발행인은 김동환(金東煥)이며, 삼천리사(三千里社)에서 발행했다.
1929년 6월 창간되어 월간·격주간 등으로 B5판, B4판 또는 A5판으로 간행되다가, 『대동아(大東亞)』로 제명을 고쳐 1942년 3월과 7월 두 호를 더 내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급한 취미로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에 치중해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特種)을 잘 포착해 지상(誌上)에 곧 반영시켰다.
우리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작가 여럿이 집필한 「문예강좌」와 김동인(金東仁)의 「춘원연구(春園硏究)」, 여러 중견작가의 작품연대표 등은 특기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과장과 공상이 지나치고 제목에 비해 내용이 빈약한 것이 커다란 흠이며, 무엇보다도 그 친일적인 성격 때문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초기는 민족적 입장에 섰으나 1937년 이후부터 점차 친일적인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해, 마침내는 친일파 · 민족반역자를 등장시켜서 반민족적 잡지로 전락했고, 끝내는 친일 잡지 『대동아』로 개명까지 했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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