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대중
- 제호(잡지명)
-
- 한글삼천리 4권 1호
- 한문三千里 4卷 1號
- 기타三千里 新年號
- 출판사
- 三千里社 삼천리사
- 발행지
- 京城 경성
- 창간일
- 1929년 6월 12일
- 간행일
- 1932년 1월 1일
- 인쇄일
- 1932년
- 권호
- 4권 1호
- 통권
- 23호
- 간별
- 월간
- 형태
-
- 면수138page
목차
맹세 _ 파인
합법운동과 비합법운동론(合法運動과 非合法運動論)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민족문화관』 창립 발표 삼천리사의 헌신적 사업(『民族文化舘』 創立 發表 三千里社의 獻身的 事業) _ 김동환(金東煥)
나의 모교(母校)와 은사(恩師)
「재만동포」에 대한 열성(「在滿同胞」에 對한 熱誠)
최근 일본사회운동 총관(最近 日本社會運動 總觀) _ 재대판(在大阪) 임원근(林元根)
급고(急告)
나의 해외 망명시대(海外 亡命時代)
아아 자유(自由)의 파리(巴里)가 그리워, 구미 만유(歐米 漫遊)하고 온 후의 나 _ 재동경(在東京) 나혜석(羅蕙錫)
신술어(新術語)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깐듸-와 나이두 회견기(會見記), 인도(印度)에 4개월 체류(滯留)하면서 _ 최영숙(崔英淑)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1932년의 영웅적 건설사업인 『반도돌진대』운동(1932年의 英雄的 建設事業인 『半島突進隊』運動)
세배(歲拜)
삼천리사 주최 지상 청년학도웅변대회(三千里社主催 誌上 靑年學徒雄辯大會), 삼천리사(三千里社) 조고마한 정성(精誠) 수재학생학자보조(秀才學生學資補助)
대성(大聖)이 오늘 조선(朝鮮)에 태어난다면?
그리운 녯날의 학창시대(學窓時代)
반도 최대의 백화점 출현(半島 最大의 百貨店 出現), -동아백화점의 내용과 외관(東亞百貨店의 內容과 外觀)-, 얼마나 한 자본으로 엇더한 인물들이 경영하는 것인가? _ 신태익(申泰翊)
「촤프링이 법정(法政)에 나타나」-여비서에게 소송되여서
루-마니아의 황제(皇帝) 니코라쓰의 비밀결혼
지사류의 사회관 비판(志士流의 社會觀 批判), -사회현상의 인식체형(社會現象의 認識體型)에 대하야- _ 신일성(辛一星)
만주 조난동포(滿洲 遭難同胞)를 보고 와서 _ 재만동포협의회 위문사(在滿同胞協議會 慰問使) 서정희(徐廷禧)
싸베-트 동맹(同盟)의 부인(婦人)은 엇더케 지내는가 _ 함대훈(咸大勳)
사고(社告)
결혼은 과연 연애의 분묘(墳墓)?
여자해방운동(女子解放運動) _ 전유덕(田有德)
소화(笑話), 연애정조(戀愛情調)
전위여성단체의 진용(前衛女性團體의 陳容)(3), 조선여자기독연합회(朝鮮女子基督聯合會) _ 부인기자(婦人記者)
소화(笑話)
교차점(交叉點)
잡저
서울에 돌현(突現)한 여성의 집단적 룸펜군(群), -룸폔의 연구를 겸하야- _ 최정희(崔貞熙)
무산부인의 운동(無産婦人의 運動)은 어대로 가나 _ 김은희(金銀姬)
사십오명(四十五名)으로 조직(組織)된 「청상과부구락부(靑孀寡婦俱樂部)」,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이 긔괴한 「에로」단체 _ 팔련화기(八蓮花記)
아메리카 학계(學界)에서의 오백년후(五百年後)의 「꿈」, 『화성(火星)에 간다』『못간다』는 것으로 논쟁(論爭)
김립 시 초역(金笠 詩 抄譯) _ 이응수(李應洙)
세계(世界) 푸로레타리아 작품특집(作品特輯)
전세계(全世界) 거인(巨人)의 절규(絶叫)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에스페란토란(欄) _ 안서 김억(岸曙 金億)
년두감(年頭感), -신년호 인쇄(新年號 印刷)를 마치며-
해제
1929년에 취미와 시사 중심의 대중지 성격으로 발행한 교양 잡지. 편집인 겸 발행인은 김동환(金東煥)이며, 삼천리사(三千里社)에서 발행했다.
1929년 6월 창간되어 월간·격주간 등으로 B5판, B4판 또는 A5판으로 간행되다가, 『대동아(大東亞)』로 제명을 고쳐 1942년 3월과 7월 두 호를 더 내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급한 취미로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에 치중해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特種)을 잘 포착해 지상(誌上)에 곧 반영시켰다.
우리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작가 여럿이 집필한 「문예강좌」와 김동인(金東仁)의 「춘원연구(春園硏究)」, 여러 중견작가의 작품연대표 등은 특기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과장과 공상이 지나치고 제목에 비해 내용이 빈약한 것이 커다란 흠이며, 무엇보다도 그 친일적인 성격 때문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초기는 민족적 입장에 섰으나 1937년 이후부터 점차 친일적인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해, 마침내는 친일파 · 민족반역자를 등장시켜서 반민족적 잡지로 전락했고, 끝내는 친일 잡지 『대동아』로 개명까지 했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