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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잡지명)
  • 한글삼천리 3권 12호
  • 한문三千里 3卷 12號
  • 기타三千里 送年號
출판사
三千里社 삼천리사
발행지
京城 경성
창간일
1929년 6월 12일
간행일
1931년 12월 1일
인쇄일
1931년
권호
3권 12호
통권
22호
간별
월간
형태
  • 면수103page

목차

행진(行進)(외 3편) _ 파인
일중전쟁 작전 계획, 중국 사관이 비밀작제(日中戰爭 作戰 計劃, 中國 士官이 秘密作製) _ 문병문(門炳文)
신간회 해소 후 제정세 전망(新幹會 解消 後 諸情勢 展望),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제1호, 명창의 보수(名唱의 報酬)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제5호), 로서아의 신문부수(露西亞의 新聞部數)
아하. 마즈막 얼골, 제야(除夜)의 슬푼 종소리 드르면서
서울 직업부인(職業婦人)의 보수(報酬)
금후의 극동(今後의 極東), -특히 로서아(露西亞)의 대극동책(對極東策)에 대하야- _ 김세용(金世鎔)
급고(急告)
1931년의 국제자본주의(國際資本主義) _ 해송학인(海松學人)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제5호(第5號) 동아일보 발행 비화(東亞日報 發行 祕話)
그리운 내 고향(故鄕)
상해풍경(上海風景), 누-란 사건(事件) _ 상해(上海) 홍양명(洪陽明)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제5호 기밀비(機密費)
내가 조와하는 소설 중의 여성(小說 中의 女性)
상해 불조계(上海 佛租界)에서 생긴 천고의 비사(千古의 祕史), 비율빈운동자 대검거 비록(比律賓運動者 大檢擧 祕錄) _ 상해거사(上海居士)
사고(社告)
이규완의 김옥균 박영효 평(李圭完의 金玉均 朴泳孝 評) _ 김진구(金振九)
삼천리 「벽신문」(三千里 「壁新聞」) 제5호, 각국의 국화(各國의 國花)
최고학부(最高學府)를 찻고서(1), 문학과 음악의 전당 이화여자전문학교(文學과 音樂의 殿堂 梨花女子專門學校), 기숙사(寄宿舍)의 여러 가지 로-맨스 등(等) _ 김팔련(金八蓮)
급고(急告)
나의 처녀시대(處女時代) _ 최의순(崔義順)
벽신문(壁新聞) 제4호, 아메리카 도시 시민의 오락비 조사(都市 市民의 娛樂費 調査)
삼천리 강좌(三千里 講座) _ 해정학인(海庭學人)
삼천리 강좌(三千里 講座), 현하의 중국 부인운동(現下의 中國 婦人運動) _ 북풍학인(北風學人)
여성군상(女性群像) _ 김을한 기(金乙漢(記)), 이승만 화(李承萬(畵))
사고(社告)
전위 여성단체 방문기, 불교여자청년회의 진형(前衛 女性團體 訪問記, 佛敎女子靑年會의 陣形) - 장차 전선에 조직을 확장한다고 한다 -
교차점(交叉點)
이혼공개장(離婚公開狀) _ 김기림(金起林)
과거(過去)에만
표박의 시민(漂泊의 市民) 『집씨-의 연애와 생활(戀愛와 生活)』, 3일 간을 그들과 함께 지나든 이약이 _ 백림학인(伯林學人)
기도하는 동정녀군(祈禱하는 童貞女群), 그네의 긔도와 례배, 금욕생활, 그네의 로만스는 엇더한가, 천주교 수도원(天主敎 修道院)을 탐방(探訪)하고 _ 최정희(崔貞熙)
남성(男性)의 유혹(誘惑)에 익이든 실화(實話) _ 황애시덕(黃愛施德), 고성숙(高聖淑), 김정길(金貞吉)
밀정비화(密偵秘話), 세계(世界)를 흔드든 요염(妖艶)한 여(女)스파이 _ 독거루 주인(獨居樓 主人)
동경 은좌(銀座)에 진출(進出)한 조선각씨(朝鮮閣氏), 직업부인이 되어 씩씩하게 활동함니다. _ 재동경(在東京) 이일광(李逸光)
만국(萬國)에 일홈 날니는 여성(女性)(1) _ 채미다(蔡美多)
그들과 우리 _ 김약수(金若水)
아츰해 송가(頌歌) _ 편석촌(片石村)
문단잡화(文壇雜話) _ 초사(草士)
미의 조건(美의 條件), 내 소설(小說)에 올니고 십흔 여성(女性)의 타입(1) _ 최독견(崔獨鵑)
오-하느님! _ 방인근(方仁根)
고금(古今) _ 강남(江南)
감사(感謝)와 사죄(謝罪)

해제

1929년에 취미와 시사 중심의 대중지 성격으로 발행한 교양 잡지. 편집인 겸 발행인은 김동환(金東煥)이며, 삼천리사(三千里社)에서 발행했다.
1929년 6월 창간되어 월간·격주간 등으로 B5판, B4판 또는 A5판으로 간행되다가, 『대동아(大東亞)』로 제명을 고쳐 1942년 3월과 7월 두 호를 더 내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급한 취미로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에 치중해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特種)을 잘 포착해 지상(誌上)에 곧 반영시켰다.
우리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작가 여럿이 집필한 「문예강좌」와 김동인(金東仁)의 「춘원연구(春園硏究)」, 여러 중견작가의 작품연대표 등은 특기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과장과 공상이 지나치고 제목에 비해 내용이 빈약한 것이 커다란 흠이며, 무엇보다도 그 친일적인 성격 때문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초기는 민족적 입장에 섰으나 1937년 이후부터 점차 친일적인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해, 마침내는 친일파 · 민족반역자를 등장시켜서 반민족적 잡지로 전락했고, 끝내는 친일 잡지 『대동아』로 개명까지 했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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