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 구분
- 잡지 > 대중
- 제호(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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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삼천리 3권 9호
- 한문三千里 3권 9號
- 기타三千里 九月號
- 발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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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인韓東秀
- 인쇄인 주소京城府 黃金町 3丁目 251
- 편집 겸 발행인金東煥
- 편집 겸 발행인 주소京城府 貫鐵洞 59
- 출판사
- 三千里社 삼천리사
- 발행지
- 京城府 貫鐵洞 59
- 인쇄소
- 大盛堂印刷合資會社 대성당인쇄합자회사
- 인쇄지
- 京城府 黃金町 3丁目 251
- 발매소
- 株式會社 以文堂 주식회사 이문당
- 창간일
- 1929년 6월 12일
- 간행일
- 1931년 9월 1일
- 인쇄일
- 1931년 8월 31일
- 권호
- 3권 9호
- 통권
- 19호
- 간별
- 월간
-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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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수96page
-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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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삼천리일색(三千里一色)
삼천리일색(三千里一色)
오인(吾人)의 이목(耳目)을 만몽(滿蒙)에 모히자.
조선신문화건설 삼개년계획(朝鮮新文化建設 三個年計劃)
사고(社告)
삼천리(三千里) 「벽신문(壁新聞)」
삼천리(三千里) 「벽신문(壁新聞)」 제2호(第2號), 총독부내의 조선인간부(總督府內의 朝鮮人幹部)
해외표현단체연구(기이)(海外表現團體硏究(其二)), 동지회(同志會) _ 삼천리사 조사부 편(三千里社 調査部 編)
삼천리(三千里) 「벽신문(壁新聞)」 제3호(第3號), 각은행의 대주주(各銀行의 大株主)
정치무대에 활약하든 명화들(政治舞臺에 活躍하든 名花), 미국(米國)가 잇는 김(金)마리아와 황애시덕(黃愛施德)·신의경·김영순·리헤경·유인경·장선희·리정숙 등 3·1당시(當時)에 뛰노든 그룹들, 애O부인회비사(愛O婦人會秘史)
지도관념과 원동세력, 이광수씨의 「지도자론」비판(指導觀念과 原動勢力, 李光洙氏의 「指導者論」批判) _ 김명식(金明植)
삼천리(三千里) 「벽신문(壁新聞)」 제4호(第4號)
아해를 이저버리어
인도운동의 계급대립(印度運動의 階級對立) _ 상해(上海)에서 홍양명(洪陽明)
삼천리(三千里) 「벽신문(壁新聞)」 제5호(第5號)
이민족과의 결혼시비(異民族과의 結婚是非)
극동정세와 재만동포, 천진 관내(極東情勢와 在滿同胞, 天津 關內)
삼천리(三千里) 「벽신문(壁新聞)」 제8호(第8號)
사형잡화(死刑雜話) _ 전검사(前檢事) H. M.
조선여성운동의 중대위기, 근우회해체에 대하야(朝鮮女性運動의 重大危機, 槿友會解體에 對하야) _ 김추산(金秋山)
삼천리(三千里) 「벽신문(壁新聞)」 제6호(第6號)
중대사건 발각단서(重大事件 發覺端緖)(20년전(年前)봄) _ 유광열(柳光烈)
삼천리(三千里) 「벽신문(壁新聞)」 제7호(第7號)
눈물의 감옥면회실(監獄面會室)
심심초(草), 북촌「카페」, 각국국회(各國國會)의 당파별(黨派別)
춤 잘추는 서도기생(西道妓生) 소리 잘하는 남도기생(南道妓生)
명담사구(名談四句)
광동정부의 진용(廣東政府의 陣容) _ 거산(巨山)
신문야화(新聞夜話)
교차점(交叉點)
중국재계의 수뇌인물(中國財界의首腦人物) _ 상해악양루거사(上海岳陽樓居士)
서울 떼,까메,롱
미국 대범죄왕일대사(米國大犯罪王一代史), 『밤』의 대통령(大統領) 『카보네』 밀주(密酒), 밀*매(密*賣)로 연수(年收) 2억 2천만원
아아 태평양(太平洋)을 정복(征服)한 창공(蒼空)의 영웅(英雄) 『린드· 버-크』, 전세계를 놀내이든 그는 엇던 인물?
미국(米國)의 일본암호도역비록(日本暗號盜譯秘錄), 화성돈회의 때에 오천장이나, 일본정부(日本政府)는 크게 경악중(驚愕中), 미국 기밀실 해부(米國機密室解剖)
로서아특집(露西亞特輯)
가을밤 한울우에 _ 려수(麗水)
드나는 물(외 1편) _ 안서(岸曙)
고독(孤獨)의 가을(외 2편) _ 파인
문단잡화(文壇雜話)
문예시평(文藝詩評), 『홍도(紅熖)』에 나타난 『의식(意識)의 흐름』 _ 김기림(金起林)
해당화(海棠花) 필 때, 명사십리(明沙十里)에서 _ 초사(草士)
물레방아 _ 도향(稻香) 유고(遺稿)
감사(感謝)와 사죄(謝罪)
해제
1929년에 취미와 시사 중심의 대중지 성격으로 발행한 교양 잡지. 편집인 겸 발행인은 김동환(金東煥)이며, 삼천리사(三千里社)에서 발행했다.
1929년 6월 창간되어 월간·격주간 등으로 B5판, B4판 또는 A5판으로 간행되다가, 『대동아(大東亞)』로 제명을 고쳐 1942년 3월과 7월 두 호를 더 내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급한 취미로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에 치중해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特種)을 잘 포착해 지상(誌上)에 곧 반영시켰다.
우리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작가 여럿이 집필한 「문예강좌」와 김동인(金東仁)의 「춘원연구(春園硏究)」, 여러 중견작가의 작품연대표 등은 특기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과장과 공상이 지나치고 제목에 비해 내용이 빈약한 것이 커다란 흠이며, 무엇보다도 그 친일적인 성격 때문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초기는 민족적 입장에 섰으나 1937년 이후부터 점차 친일적인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해, 마침내는 친일파 · 민족반역자를 등장시켜서 반민족적 잡지로 전락했고, 끝내는 친일 잡지 『대동아』로 개명까지 했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