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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 대중
제호(잡지명)
  • 한글삼천리 제6호
  • 한문三千里 第6號
  • 기타三千里 初夏號
발행자
  • 인쇄인沈禹澤
  • 인쇄인 주소京城 公平洞 55
  • 편집 겸 발행인金東煥
  • 편집 겸 발행인 주소京城 仁寺洞 19
출판사
三千里社 삼천리사
발행지
京城 仁寺洞 19
인쇄소
大同印刷株式會社 대동인쇄주식회사
인쇄지
京城 公平洞 55
발매소
永昌書舘 영창서관
창간일
1929년 6월 12일
간행일
1930년 5월 1일
인쇄일
1930년 4월 29일
통권
6호
간별
월간
형태
  • 면수80page
가격

목차

공개장모집(公開狀募集)
미국대통령선거전(美國大統領選擧戰) _ 김려식(金麗植)
중국, 상해의 영화배척광경(中國, 上海의 英貨排斥光景) _ 주요한(朱耀翰)
불란서 파리의 오월 일일 행진(佛蘭西 巴里의 五月 一日 行進) _ 이정섭(李晶燮)
영국, 여권확장운동의 여장사행진, 일만여성이 륜돈시가로 시위행렬(英國, 女權擴張運動의 女壯士行進, 一萬女性이 倫敦市街로 示威行列) _ 륜돈(倫敦)에서 검교학인(劍橋學人)
이태리, 순교자 백년기념대제례성관, 기독구교의 성대한 기념제 광경/(伊太利, 殉敎者 百年紀念大祭禮盛觀, 基督舊敎의 盛大한 紀念祭 光景) _ 정석태(鄭錫泰)
춘원의 자서전(春園의 自叙傳)
제씨의 성명(諸氏의 聲明)
야순탐보대(夜巡探報臺)
끽연실(喫煙室)
소화(笑話)
아등과 삼법령(我等과 三法令) _ 이인(李仁), 한국종(韓國鍾), 권승렬(權承烈)
예론환영(譽論歡迎)
법정에 선 신문기자의 인상(1), 손병희(法廷에 선 新聞記者의 印象(其一), 孫秉熙) _ 유광열(柳光烈)
열차중의 여운형(列車中의 呂運亨) _ 김을한(金乙漢)
궁녀애음(宮女哀吟)
법정에 선 독살미인 김정필(法廷에 선 毒殺美人 金貞弼) _ 오류촌거사(梧柳村居士)
명사의 서재(名士의 書齋)
사형폐지론, - 인도상과 형사정책상으로(死刑廢止論, - 人道上과 刑事政策上으로 -) _ 송진우(宋鎭禹)
나는 웨 승(僧)이 되엇나? _ 한용운(韓龍雲)
오년만의 조선사회(五年만의 朝鮮社會) _ 임원근(林元根)
쿠로포토킨 탈주기(脫走記) _ 한양성인 역초(漢陽成人 譯抄)
백림교외의 나체국방문(伯林郊外의 裸體國訪問) _ 파리 신문기자(巴里新聞紀者) 고와이에 수기(手記)
최송설당여사일대기, 삼십만원을 교육에(崔松雪堂女史一代記, 三十萬圓을 敎育에) _ 김수길(金壽吉)
신양성도덕의 제창(新兩性道德의 提唱) _ 윤성상(尹聖相), 황신덕(黃信德), 나혜석(羅惠錫), 정석태(鄭錫泰)
애란 대통령의 탈옥(愛蘭大統領의 脫獄) _ 애란(愛蘭) 따부린시(市)에서 춘추필부(春秋匹夫)
오호, 비명의 이고인(嗚呼, 非命의 二故人) _ 김동진(金東進), 한양거사(漢陽居士)
중국후궁비사(中國后宮秘史)(1)
○미안(未安)한 말슴
내 소설과 모델 _ 이광수(李光洙), 염상섭(廉想燮), 현진건(玄鎭健), 이익상(李益相), 최서해(崔曙海)
명문의 향미(名文의 香味), 남유잡감(南遊雜感) _ 이광수(李光洙)
명문의 향미(名文의 香味), 신흥문예의 구도에 대하야(新興文藝의 構圖에 對하야) _ 팔봉 김기진(八峯 金基鎭)
명문의 향미(名文의 香味), 산새 _ 김소월(金素月)
명문의 향미(名文의 香味), 아아 이상재선생(李商在先生) _ 주요한(朱耀翰)
명문의 향미(名文의 香味), 상해(上海)에서 _ 이광수(李光洙)
명문의 향미(名文의 香味), 별후(別后) _ 양주동(梁柱東)
적화삼제(한시)(摘花三題)(漢詩) _ 김안서(金岸曙)
웃는 낫이 그리워(외 1편) _ 정로풍(政蘆風)
오호, 구십춘광(嗚呼, 九十春光!) _ 김일엽(金一葉)
여인수제, -온천잡감-(女人數題, -溫泉雜感-) _ 김동인(金東仁)
아호의 유래(雅號의 由來)(2)
미인보는 십처소(美人보는 十處所)
편집자의 독백
기념호 발행예고(紀念號 發行豫告)

해제

1929년에 취미와 시사 중심의 대중지 성격으로 발행한 교양 잡지. 편집인 겸 발행인은 김동환(金東煥)이며, 삼천리사(三千里社)에서 발행했다.
1929년 6월 창간되어 월간·격주간 등으로 B5판, B4판 또는 A5판으로 간행되다가, 『대동아(大東亞)』로 제명을 고쳐 1942년 3월과 7월 두 호를 더 내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급한 취미로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에 치중해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特種)을 잘 포착해 지상(誌上)에 곧 반영시켰다.
우리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작가 여럿이 집필한 「문예강좌」와 김동인(金東仁)의 「춘원연구(春園硏究)」, 여러 중견작가의 작품연대표 등은 특기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과장과 공상이 지나치고 제목에 비해 내용이 빈약한 것이 커다란 흠이며, 무엇보다도 그 친일적인 성격 때문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초기는 민족적 입장에 섰으나 1937년 이후부터 점차 친일적인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해, 마침내는 친일파 · 민족반역자를 등장시켜서 반민족적 잡지로 전락했고, 끝내는 친일 잡지 『대동아』로 개명까지 했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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