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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잡지명)
  • 한글삼천리 제2호
  • 한문三千里 第2號
  • 기타三千里 九月號
발행자
  • 인쇄인沈禹澤
  • 인쇄인 주소京城府 公平洞 55番地
  • 편집 겸 발행인金東煥
  • 편집 겸 발행인 주소京城府 敦義洞 74番地
출판사
三千里社 삼천리사
발행지
京城府 敦義洞 74番地
인쇄소
大同印刷株式會社 대동인쇄주식회사
인쇄지
京城府 公平洞 55番地
발매소
博文書舘 박문서관
발매지
京城 鍾路 2ノ82
창간일
1929년 6월 12일
간행일
1929년 9월 1일
인쇄일
1929년 8월 30일
통권
2호
간별
월간
형태
  • 면수52page
가격

목차

◇반도팔경(半島八景) 답사문인발표(踏査文人發表)◇
삼천리(三千里)에 핀 일색(一色)들
과거(過去)의 선구자(先驅者)와 장래(將來)의 선구자(先驅者) _ 안재홍(安在鴻)
선구자(先驅者)를 바라는 조선(朝鮮) _ 이광수(李光洙)
「적련(赤戀)」 비판(批判), 꼬론타이의 성도덕(性道德)에 대(對)하야 _ 정칠성(丁七星)
명사(名士)의 멘탈테스트(1), 근우회중앙위원장(槿友會中央委員長) 정칠성씨(丁七星氏)
술과 여자(女子)는 죽을 때까지 남자를 웃긴다.
소화(笑話)
삽화(揷話)
이상적 남편(理想的 男便) _ 잡담실(雜談室)
정치(政治) 박명(薄命)의 지사(志士) 김옥균(金玉均), 영광(榮光)의 조선선구자(朝鮮先驅者)들!! _ 민태원(閔泰瑗)
종교(宗敎) 이상재씨(李商在氏)와 손병희씨(孫秉熙氏), 영광(榮光)의 조선선구자(朝鮮先驅者)들!! _ 윤치호(尹致昊)
문학(1) 신문예운동(新文藝運動)의 선구자(先驅者), 영광(榮光)의 조선선구자(朝鮮先驅者)들!! _ 주요한(朱耀翰)
문예(2) 조선프로문예운동의 선구자, 영광(榮光)의 조선선구자(朝鮮先驅者)들!! _ 김기진(金基鎭)
연극(演劇)·영화(映畵), 극계(劇界)·영화계(映畵界)의 선구자(先驅者), 영광(榮光)의 조선선구자(朝鮮先驅者)들!! _ 관악산인(冠岳山人)
무제
상해보산로(上海寶山路) _ 이여성(李如星)
춘원(春園)과 「김옥균(金玉均)」 _ 잡담실(雜談室)
세계일주기행(제2신)(世界一週紀行)(第二信), 꼿의「바리웃드」를 보고, 다시 태서양(太西洋) 건너 애란(愛蘭)으로! _ 허헌(許憲)
명사(名士)의 멘탈테스트(2), 조선일보사장(朝鮮日報社長) 신석우씨(申錫雨氏)
자서전(自叙傳) _ 홍명희(洪命憙)
명사(名士)의 멘탈테스트(3), 동아일보사장(東亞日報社長) 송진우씨(宋鎭禹氏)
자화상(自畵像), 파란중첩오십년간(波瀾重疊五十年間) _ 최린(崔麟)
잡담실(雜談室)
나의 연애(戀愛)와 결혼관(結婚觀) _ 최의순(崔義順)
방랑(放浪), 교수(敎授), 변호사(辯護士) _ 김병로(金炳魯)
무두무미록(無頭無尾錄) _ 동경(東京)에셔 설의식(薛義植)
빈궁(貧窮), 투쟁(鬪爭), 고독(孤獨)의 반생(半生) _ 정종명(鄭鍾鳴)
신흥중국(新興中國)을 보고 _ 이관용(李灌鎔)
이혼문제(離婚問題)와 현대 법률(現代 法律) _ 변호사 이인(辯護士 李仁)
민족보건(民族保健)의 공포시대(恐怖時代), 폐병요양소(肺病療養所)의 설치(設置) 제의(提議) _ 의학박사(醫學搏士) 정석태(鄭錫泰)
자연과학강좌(自然科學講座)(1), 야만인(野蠻人)과 수적 관념(數的 觀念) _ 이정섭(李晶燮)
배구자(裵龜子)의 무용전당(舞踊殿堂), 신당리문화촌(新堂理文化村)의 무용연구소(舞踊硏究所) 방문기(訪問記)
명호박명(鳴呼薄命)의 문사(文士)들
말몰이(외 2편) _ 이은상(李殷相)
가살극(哥薩克) 자장가(歌) _ 김동진 역(金東進 譯)
잡담실(雜談室), 결혼하라거든
실화(實話), 인육시장(人肉市場)에 판 불상한 「수향(水香)」
◇편집이후(編輯以后)◇

해제

1929년에 취미와 시사 중심의 대중지 성격으로 발행한 교양 잡지. 편집인 겸 발행인은 김동환(金東煥)이며, 삼천리사(三千里社)에서 발행했다.
1929년 6월 창간되어 월간·격주간 등으로 B5판, B4판 또는 A5판으로 간행되다가, 『대동아(大東亞)』로 제명을 고쳐 1942년 3월과 7월 두 호를 더 내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급한 취미로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에 치중해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特種)을 잘 포착해 지상(誌上)에 곧 반영시켰다.
우리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작가 여럿이 집필한 「문예강좌」와 김동인(金東仁)의 「춘원연구(春園硏究)」, 여러 중견작가의 작품연대표 등은 특기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과장과 공상이 지나치고 제목에 비해 내용이 빈약한 것이 커다란 흠이며, 무엇보다도 그 친일적인 성격 때문에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초기는 민족적 입장에 섰으나 1937년 이후부터 점차 친일적인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해, 마침내는 친일파 · 민족반역자를 등장시켜서 반민족적 잡지로 전락했고, 끝내는 친일 잡지 『대동아』로 개명까지 했다.(해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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